그 모델은 신은지가 또 거절할 까봐 덧붙여 말했다. "오늘 파티 주최자가 '오늘 가장 많이 새로운 사람을 카톡 친구로 추가하는 사람에게 부모님과 함께 해외여행을 갈 수 있는 여행권을 제공한다'라고 말해서요.” 남자 모델과 육정현은 키가 비슷했다. 육정현은 세상 모든 것을 자신의 아래로 보는 태도로 그 남자모델에게 말했다. "뉴스도 안 봐요? 요즘 같은 시대에 회사에서 조직한 해외여행에 참여하겠다는 말이에요? 죽을까 봐 두렵지 않아요? 몸이 토막 날 까봐 무섭지도 않나?” "……” 신은지는 할 말을 잃었다. 남자 모델은 그제야 육정현에게 시선을 돌려 그를 위에서 아래로 한 번 훑어보고는 결국 그의 복부를 보며 말했다. "신은지 씨, 이 사람은 딱 봐도 별로예요. 아마 근육도 없을 걸요? 이 남자랑 함께 있으면 기본적인 안정감도 못 받을 거예요. 만약 나쁜 사람을 만나면 신은지 씨가 이 남자를 보호해야 할지도 몰라요.” 그 모델을 힐끗 흘겨보는 육정현의 시선은 섬뜩할 정도로 차가웠다. “보기만 해도 별로라고? 근육이 하나도 없을 거라고?” 남자 모델이 육정현을 도발했다. "아닌가요? 아니면 수영복으로 갈아입어봐요. 누구 몸매가 더 여자를 설레게 하는지 한번 보자고요.” 전문 트레이너와 함께 운동하며 조금씩 근육을 키운 남자 모델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육정현은 비웃으며 그의 손을 잡아당겼다가 내쳤다. “퍽!” 1미터 80센티미터의 근육질의 남자가 순식간에 파편처럼 날아가 벽에 부딪히며 신음소리를 냈다. 육정현은 그를 경멸하듯 쳐다보았다. “보기에만 좋지 근육이 있어도 별로 쓸모도 없네.” "……” 신은지는 다시 한번 할 말을 잃었다. 이 남자는 정말 독하고 뒤끝이 길다. 육정현이 자리를 뜨자 모델이 한 손으로 벽을 짚으며 힘겹게 바닥에서 일어났다. "신은지 씨, 이건 돈을 더 줘야 해요. 저 남자를 수영복으로 갈아입게 자극해 달라고 해서 그렇게 했고, 난 맞겠다는 말은 안 했어요.”" 돈을 더 달라고요?" 그 남자 모델
곽동건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잡아당기며 셔츠의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섹시한 목젖이 그의 긴 손가락에 닿자 지켜보고 있던 진유라도 참지 못하고 침을 삼켰다. 저렇게 몸매도 좋으니 분명 감촉도 좋을 것이다. 만져봐도 손해 볼 게 없을 것 같은데 사이즈랑 키가 비례하는지...... 진유라는 갑자기 자신이 야한 생각을 했다는 것을 가차 없이 자신의 이마를 때렸다. "곽 변호사님, 차라리 누구를 죽이겠다고 하면 제가 바로 갈게요. 제발 저를 유혹하지 말아요. 제가 참지 못하고 무슨 정신 나간 짓을 저지를까 스스로도 두렵다고요.” 그녀는 곽동건의 아름다운 쇄골을 바라보며 말했다. "강간죄는 보통 징역 몇 년을 선고해요?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먼저 생각해 봐야겠어요.” 곽동건은 풀었던 단추를 다시 잠갔다. ”조금 더워서 그런 거예요. 방금 전화기 울렸어요.” 신은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진유라는 코를 만지작거리고 전화를 받으며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다행히 코피는 나지 않았다. …… 육정현의 차가 클럽하우스 지하 1층에 주차되어 있었다. 차가 멈추자 그는 바로 차에 앉지 않고 고개를 숙여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의 차갑고 단단한 이목구비가 담배 연기에 누그러졌다. 육정현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회백색 연기를 천천히 내뿜었다.그는 눈을 내리깔았다. 시선이 자신의 왼손 손바닥에 떨어졌다. 방금 육정현은 이 손으로 신은지의 배를 만졌다. 부드러운 촉감이 지금도 손바닥을 휘감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겨우 10월 초라 날씨가 아직 그다지 춥지 않았다. 파티장 안은 에어컨이 켜져 있고 신은지는 옷을 얇게 입고 있어서 옷 위로 그녀의 체온을 느낄 수 있었다. 육정현은 무언가를 움켜쥐려는 듯 손가락을 움직였지만 무의미한 몸짓에 불과했다. 눈을 감고 있는 육정현은 머릿속이 몇 초 동안 순간적으로 멍해지고 둔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도도하면서도 차가운 그의 모습은 백열등에 휩싸여 유난히 담담하고 쓸쓸해 보였다. 한적한 주차장에 단
육영 그룹. 육정현은 눈을 감고 한 손으로 관자놀이를 누르며 어딘가 불편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사무실 문이 열리며 누군가 조심히 걸어 들어왔지만 카펫 위에 발이 닿으며 낮게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인기척을 들은 육정현은 관자놀이를 문지르던 손을 잠시 멈추고 천천히 눈을 뜨고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야?” 표정은 냉담했지만 눈에는 온통 그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다. "방 비서님이 실수로 계단에서 굴러서 다리가 부러졌다고 들었어. 아무도 형을 들여다보지 않고 또 형이 스스로 몸을 들볶을까 봐 걱정돼서." 기민욱이 관자놀이를 누르는 육정현을 보며 물었다. "또 머리 아파?” 기민욱은 청초하고 잘생긴 외모, 마른 체격에 유난히 흰 피부를 갖고 있었다. 그의 미간에는 20대 남자가 가져야 할 씩씩함이 서려 있었고 눈빛이 살아있었다. “아니, 오전 내내 서류만 봤더니 피곤해서 그래." 육정현은 손을 내려놓고 목을 움직였다. 기민욱은 능숙하게 서랍 약상자 안에서 알약 두 알을 꺼내 육정현에게 건네주었다. "형, 오 박사님이 며칠 동안 형이 안 왔다고 하던데, 요즘 좀 괜찮은 거야?” "머리도 별로 안 아팠고, 회사 일도 많아서 정말 시간을 뺄 수가 없었어." 육정현은 기민욱이 내민 알약을 그제야 보았다. 늘어진 속눈썹이 육정현 눈 밑의 어두운 빛을 가렸다. "방금 약 먹었어. 거기 놔둬.” 기민욱이 말했다. "진작에 이렇게 몸 잘 챙겼으면 방 비서님이 입원했다는 말을 듣고 내가 이렇게 바로 날아오지 않았을 거야." 기민욱은 말을 하며 병에 든 약을 손바닥에 다 붓고 숫자를 세었다."형, 지금 거짓말했어. 이 약 한 병에 40알이 들어있어. 하루에 6알씩 먹는 거고 일수로 따지면, 형이 점심에 먹었으면 6알은 남아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8알 남았어.” 그는 허리를 굽히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형, 약이 쓰다고 약을 안 먹으면 안 돼. 오 박사님이 약을 잘 먹어야 한다고 하셨어. 그렇지 않으면 병이 낫지 않을 거
송 사장은 다른 사람들도 초대했지만 몇 사람이 들어와 옷을 갈아입을 때까지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신은지는 현재 대외적으로 임산부였기에 격렬한 운동을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신은지가 말했다."송 사장님, 이틀 전에 보내 드린 계약서 있잖아요......”송 사장은 골프 클럽을 잡고 손을 흔들며 말했다."신은지 씨, 저는 공치러 와서는 일 얘기는 하지 않아요. 모처럼 시간 내서 왔는데 좀 편히 쉬어요.”송 자장은 신은지를 할끗 쳐다보았다."신은지 씨, 내가 오늘 홀인원을 할 수 있을지 맞혀보는 것이 어때요.”신은지가 뭐라고 말하기 전에 나유성이 먼저 말했다."송 사장님의 실력이 대단하다고 소문이 자자해요. 상도 탔다고 하던데 홀인원은 식은 죽 먹기 아닌가요?”송 사장은 웃으면서 나유성을 가리켰다.그 자리에는 모두 남자들 밖에 없었고 나유성은 송 사장의 마음을 한눈에 간파할 수 있었다.하프타임.송 사장은 땀을 닦으며 물을 마신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신은지 씨, 계약서를 검토해 봤는데 비율적인 측면에서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아요."송 사장은 손을 뻗어 숫자를 세어 보았다."출자는 그대로 두되 원래의 기준보다 5%의 이익을 더 내야 해요.”신은지는 백화점 일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 송 사장이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이 협력은 신은지가 진행되는 과정에 참여했고, 박용선이 그녀에게 비용을 계산해 주었다.송 사장이 제시한 이 요구는 전혀 불가능한 것이었다. "송 사장님, 사장님도 사업가이신데 이건 불가능하다는 것 정도는 아실 겁니다. 이윤을 늘리는 것에 관해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송 사장님도 그에 따라 투자를 늘려야 하지 않을까요?” "괜찮아요. 전 육 사장과도 약속이 있어요. 박 이사님이 어렵다고 하시면 육 사장님과 얘기해 볼게요.” 나유성은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송 사장님……” 여유롭게 차를 마시던 송 사장은 갑자기 벌떡 일어나 활짝 웃으며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정말 호
나유성과 두 경기를 마친 송 사장은 팔이 저려 연달아 두 번이나 샷 실수를 했다. 그 뒤로는 잠시 휴식을 취하며, 육정현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아까는 분명 실수라고 생각했던 샷들인데, 그가 놀랍도록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모습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대표님, 스윙 기술 대단한데요? 프로 선수 못지않은 것 같아요.""제가 기술이 좋은 게 아니라, 송 사장님 실력이 부족한 거예요.""...."대놓고 조롱하는 것보다 더한 모욕이었다. 육정현은 정말로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인 것 같았다. 아무리 독설가라는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깜빡이 없이 훅 치고 들어올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비즈니스만 아니었다면, 당장 손절당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송 사장의 표정을 본 신은지는 사업 얘기하기 글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애써 실망감을 감추며 고개를 돌렸다. 그가 진짜로 박태준이었다면, 재경그룹의 밥그릇을 뺏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신은지가 지쳐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유성아, 우리 먼저 갈까?"나유성이 그녀의 상태를 알아차리곤 답했다."옷 좀 갈아입고 올게. 휴게실 가서 좀 쉬고 있어."이때, 육정현이 갑자기 경기를 멈추고 골프채를 거치대에 올려놓았다."송 사장님, 저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이 골프장은 회원제로 운영되는 곳이었으며, 모든 이용객은 연간 회원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 덕분에 골프장은 어느 곳보다 깔끔하게 관리되어 있었고 인테리어도 매우 고급스러웠다. 물론 화장실도 예외 없이 바닥, 세면대, 거울 할 것 없이 모두 빛이 반짝일 정도로 깨끗했다. 또한 이용객들을 배려해 좋은 향기가 나도록 방향제까지 배치되어 있었다. 육정현은 손을 씻은 뒤, 무심한 표정으로 물기를 제거하기 위해 휴지를 뽑았다. "박태준, 너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이때, 화장실로 따라 들어온 나유성이 옆 세면대에 서며 말했다. 평소의 이미지답지 않게 굉장히 냉랭한 표정이었다. "안 그래도 네가 실종되는 바람에 재경 그룹이 큰 타
"신은지 씨, 급한 일 없으면 같이 식사라도 할까요? 협력 건에 대한 얘기도 나눠야 하고, 비서보고 식사 예약 해놓으라고 했어요.신은지는 사실 송 사장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러 간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갑자기 태도를 돌변하며 친절하게 말을 걸어오자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그럼 육 대표님이 오시면 출발하시죠."송 사장이 예약한 레스토랑은 예약이 필수인 프라이빗한 중식당이었는데, 골프장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다 같이 출발했는데 막상 레스토랑에 도착하고 보니, 세 사람이 함께 앉을 수 있는 자리는 육정현 옆뿐이었다.결국 어쩔 수 없이 나유성이 육정현 옆으로 앉으려고 할 때, 핸드폰을 보고 있던 육정현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여기 앉으시게요? 신은지 씨 파트너 자격으로 이곳에 온 거 아니에요? "육정현은 앉은 자세로도 위압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둘 사이에 살벌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 누구도 먼저 물러나는 것 없이, 대치상황이 지속되었다. 그런데 이때, 진영웅이 재빨리 의자를 끌어당기며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저도 재경 그룹 사람이니, 이쪽에 앉아도 되죠?”육정현은 신은지에게 흑심을 품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그는 정정당당하게 구애하지 않고, 사사건건 재경그룹 일에 끼어들며 방해했다. 이를 지켜보던 진영웅은 육정현의 뜻대로 되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박태준이 없는 이상, 그도 신은지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육정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을 흘겨본 뒤, 송 사장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진영웅은 괜히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박태준이 떠올라 기분이 살짝 울적해졌다. 만약 박태준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분명 그의 행동에 칭찬했을 테니까. 이어서 신은지와 나유성도 옆으로 자리를 잡았다. 모두가 자리에 앉은 것을 본 송 사장이 주문을 시작했다."먼저 대게 두 마리 주문할게요. 지금 대게가 제철이라 아주 통통하고 맛있거든요. 신은지 씨도 한번 드셔보세요.""신은지 씨
강혜정의 안색이 안 좋아진 것을 본 박용선이 급히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잘못되진 않았어. 하지만...."그리고는 크게 숨을 들이켜며, 단숨에 진실을 내뱉았다. "잘못될 수가 없는 게, 은지가 임신하지 않았거든. 그때 당신이 하도 상황이 안 좋아서, 뭐라도 먹여야 하는데.... "박용선이 속사포처럼 말을 내뱉았다. 괜히 말을 끌었다가 강혜정이 숨넘어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뒷말은 들을 필요도 없었다. 강혜정은 충분히 그의 말을 알아들었다. 그녀의 미간이 찌푸려지며 눈가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애가 없어졌다는 거 아니야?"박용선이 정정했다. "없어진 게 아니지, 처음부터 없었던 거지.""같은 말 아니야?""엄연히 같은 말은 아니지…."있었던 것이 없어진 거랑 처음부터 없었던 건 매우 달랐지만, 박용선은 차마 더 말할 수 없었다. 강혜정의 눈빛이 너무 애절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우선 그녀의 기분을 달래는 것이 먼저였다. "아냐, 아냐. 당신 말이 다 맞아...."다음날, 신은지는 일어나자마자 진영웅의 연락을 받았다. 그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모님, 오늘 아침 경제 뉴스 보셨어요?""아니요."대답하는 동시에 신은지는 얼른 뉴스를 틀었다. "무슨 일 있어요?"현재 재경그룹은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작은 비바람에도 휘청일 수 있었다. 진영웅의 말투에 담긴 다급함을 느낀 신은지는 덩달아 같이 긴장했다. "어제 저희가 협력하려 찾아갔던 그 광영 그룹 말이에요. 그 회사에서 생산된 제품에 큰 문제가 있어서 언론에 고발당했어요. 오늘 아침에 대대적인 수사가 들어가고 난리가 아니었대요."그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계약 안 하길 잘했어요."안 그래도 좋지 않은 상황에 이슈가 터진 광영 그룹과 엮였다면 더 크게 휘청였을지도 몰랐다. 그 말을 들은 신은지는 어제 육정현의 모습을 떠올렸다. 송 사장과 사업 얘기를 하러 왔다면서, 골프 치고 밥만 먹고 갔다. 어디에 봐도 사업에는 큰 의지가 없어 보이는 모습이
신은지가 결연한 표정으로 단호히 답했다. "아니요. 박태준은 죽지 않았어요. 제가 증명할 거예요.""...."그가 다시 입술을 비틀며 비꼬듯 말했다. "그 사람이 그렇게 좋아요?""그걸 당신한테 대답해 줘야 할 의무는 없는 것 같은데요?""그런데 박태준 대표와 이혼한 상태라면서요? 그렇게 좋으면, 왜 재결합하지 않았어요?"신은지가 그의 바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바지 벗어주면 알려줄게요."매우 건조하고도 진지한 말투였다. 그래서 육정현은 그녀가 다른 마음이 있을 거라 오해하지 않았지만,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지도 않았다."그가 살아있었다면, 신은지 씨와 아이를 왜 만나러 오지 않았을까요?"육정현이 신은지의 배 위로 손을 올려놓으며 비꼬듯 말했다. "제가 진짜 박태준이라면 굳이 육정현인척 연기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아무 이득도 없는데.”그러나 말과는 달리 그의 손길은 매우 다정했다. 신은지는 그의 행동에 점점 더 헷갈렸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남자는 아직 육정현의 신분이었고,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한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그런데 한쪽 손이 아직 잡혀 있었던 탓에 발이 꼬이고 말았다. 신은지의 몸이 뒤로 넘어가려던 순간, 육정현이 다급히 그녀를 감싸안으며 자신의 품으로 끌어들였다. 신은지는 순식간에 그의 어깨에 얼굴을 부딪치고 말았다. 시큼한 고통이 코를 통해 찌르르 전해졌다. "아!""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육정현이 매우 당황한 듯 물었다. 하지만 차마 더 다칠까 봐 신은지를 밀어내지 못하고 자리에 굳어버렸다. 신은지는 그의 심장박동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다급해진 육정현이 그녀를 품에서 떼어내며 눈을 마주쳤다. "신은지 씨, 괜찮아요? 어디 아파요?" 익숙한 얼굴에 익숙한 목소리였지만, 남자는 더 이상 그녀를 다정히 은지라고 불러주지 않았다. 신은지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핑하고 돌았다. "태준아."그런데 이때, 육정현은 알 수 없는 열기가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것을